히로시마시(広島市ひろしまし)는 일본 히로시마현의 도시로, 현청 소재지이다. 일본 전국에서 11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1974년에는 인구가 80만 명을 넘어 정령지정도시 지정을 요구해 온 결과 1980년 4월 1일에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히로시마 현 서부에 위치하며 주고쿠·시코쿠 지방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지리적으로는 산요 지방의 거의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히로시마 도시권의 중심이 되고 있다. 게이한신과 후쿠오카 도시권의 거의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고쿠 지방 및 시코쿠 지방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나 전국 규모 기업의 지방 거점도 많이 놓여 있다. 또 서일본 유수의 공업 도시이기도 해 연안부는 공업지대를 이룬다. 근래에는 인구의 교외로의 유출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반면에 나카구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등 도심 회귀의 경향도 볼 수 있다. 히로시마는 1589년에 모리 데루모토에 의해 세토 내해의 해안 삼각주에 세워졌다. 히로시마성은 빠르게 건설되었고 데루모토는 1593년에 예전의 근거지였던 고리야마성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왔다. 데루모토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하였다. 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로시마를 포함한 데루모토의 영지의 대부분을 몰수해 자신을 지지했던 다이묘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 주었다. 히로시마 성은 1619년에 아사노 나가아키라에게 넘어갔고 나가아키라는 이 지역의 다이묘로 임명되었다. 아사노씨의 지배하에 도시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이나 소동없이 번영, 발전하였으며 확장되었다. 아사노 씨는 19세기의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이곳을 지배하였다. 히로시마는 에도 시대에 히로시마번의 수도 역할을 했고 1871년의 폐번치현 이후에 도시는 히로시마현의 현청소재지가 되었다. 메이지 시대의 도시화에 따라 히로시마는 일본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1870년대에 정부의 후원을학교 중 하나가 히로시마에 세워졌고 1880년대에 히로시마 현령이었던 센다 사다아키의 노력으로 우지나 항이 건설되었고 히로시마는 중요한 항구 도시가 되었다. 1894년에 산요 철도가 히로시마까지 연장되었고 청일 전쟁 때 군사 수송을 위해 항구에 철도역이 건설되었다. 전쟁 기간에 일본 정부는 일시적으로 히로시마로 옮겨왔고 일왕1894년 9월 15일부터 1895년 4월 27일까지 히로시마 성을 본부로 삼았다. 히로시마의 중요성은 청일 전쟁이 끝난 후 1895년 2월 1일부터 1895년 2월 4일까지 양국 대표간의 첫 번째 회담이 열렸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방적 공장을 포함한 새로운 공장들이 히로시마에 세워졌다. 히로시마의 산업화를 더욱 자극한 것은 1904년의 러일 전쟁으로, 군사 보급품의 개발과 생산을 요하게 되었다. 1915년에 히로시마 물산진열관이 건설되어 신제품의 교역과 전시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1921년에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1933년에 히로시마 현 상업장려관으로 바뀌었다. 구로시마섬(일본어: 黒島, 야에야마어: Fishīma, 오키나와어: Kurushima)은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에 있는 섬이다. 오키나와현 야에야마군 다케토미정에 속한다. 이시가키섬과 이리오모테섬 사이에 위치한 구로시마섬은 화산 위에 산호초가 쌓여 형성된 평탄한 섬으로,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과거 아름다운 산호초 해안이 유명하여 섬 주변은 해양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시가키섬에서 고속선으로 약 2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상공에서 보면 하트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트섬"으로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야에야마 제도 중에서 가장 소박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섬의 하나이다. 섬의 남쪽 끝에는 등대가 서있다. 면적은 10.02km2, 해안선의 길이는 12.6km, 최고 높이는 14m이고 인구는 2006년 1월 현재 210명이다. 육우가 섬의 주요 경제 활동이자 특산물인데, 산호에서 나온 석회질 성분이 소의 뼈를 튼튼하게 하고 육질도 좋게 하여 일본 본토에도 구로시마 소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2월에 "구로시마 소 축제"가 열린다. 구로시마의 해안은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간조 때 산호초가 넓게 노출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산호초가 파괴되기 시작하였고, 갑자기 등장한 왕가시불가사리의 급격한 번식과 포식력이 파괴의 일차적인 원인이 되었다.[1] 구로시마섬에 위치한 일본공원협회 소속의 와에야마 해양공원연구소와 이시가끼섬의 수산청 소속 수산연구소 등에서 산호초 생태계가 살아나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자각하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로시마는 바다거북의 자연 산란장으로도 연구자들에게 유명하다.[1] 각주

 히로시마시(広島市ひろしまし)는 일본 히로시마현의 도시로, 현청 소재지이다. 일본 전국에서 11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1974년에는 인구가 80만 명을 넘어 정령지정도시 지정을 요구해 온 결과 1980년 4월 1일에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히로시마 현 서부에 위치하며 주고쿠·시코쿠 지방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지리적으로는 산요 지방의 거의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히로시마 도시권의 중심이 되고 있다. 게이한신과 후쿠오카 도시권의 거의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고쿠 지방 및 시코쿠 지방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나 전국 규모 기업의 지방 거점도 많이 놓여 있다. 또 서일본 유수의 공업 도시이기도 해 연안부는 공업지대를 이룬다. 근래에는 인구의 교외로의 유출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반면에 나카구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등 도심 회귀의 경향도 볼 수 있다.

히로시마는 1589년에 모리 데루모토에 의해 세토 내해의 해안 삼각주에 세워졌다. 히로시마성은 빠르게 건설되었고 데루모토는 1593년에 예전의 근거지였던 고리야마성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왔다. 데루모토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하였다. 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로시마를 포함한 데루모토의 영지의 대부분을 몰수해 자신을 지지했던 다이묘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 주었다. 히로시마 성은 1619년에 아사노 나가아키라에게 넘어갔고 나가아키라는 이 지역의 다이묘로 임명되었다. 아사노씨의 지배하에 도시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이나 소동없이 번영, 발전하였으며 확장되었다. 아사노 씨는 19세기의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이곳을 지배하였다.


히로시마는 에도 시대에 히로시마번의 수도 역할을 했고 1871년의 폐번치현 이후에 도시는 히로시마현의 현청소재지가 되었다. 메이지 시대의 도시화에 따라 히로시마는 일본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1870년대에 정부의 후원을학교 중 하나가 히로시마에 세워졌고 1880년대에 히로시마 현령이었던 센다 사다아키의 노력으로 우지나 항이 건설되었고 히로시마는 중요한 항구 도시가 되었다. 1894년에 산요 철도가 히로시마까지 연장되었고 청일 전쟁 때 군사 수송을 위해 항구에 철도역이 건설되었다. 전쟁 기간에 일본 정부는 일시적으로 히로시마로 옮겨왔고 일왕1894년 9월 15일부터 1895년 4월 27일까지 히로시마 성을 본부로 삼았다. 히로시마의 중요성은 청일 전쟁이 끝난 후 1895년 2월 1일부터 1895년 2월 4일까지 양국 대표간의 첫 번째 회담이 열렸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방적 공장을 포함한 새로운 공장들이 히로시마에 세워졌다. 히로시마의 산업화를 더욱 자극한 것은 1904년의 러일 전쟁으로, 군사 보급품의 개발과 생산을 요하게 되었다. 1915년에 히로시마 물산진열관이 건설되어 신제품의 교역과 전시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1921년에 히로시마 현 상품진열소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1933년에 히로시마 현 상업장려관으로 바뀌었다.

구로시마섬(일본어: 黒島, 야에야마어: Fishīma, 오키나와어: Kurushima)은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에 있는 섬이다. 오키나와현 야에야마군 다케토미정에 속한다. 이시가키섬과 이리오모테섬 사이에 위치한 구로시마섬은 화산 위에 산호초가 쌓여 형성된 평탄한 섬으로,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과거 아름다운 산호초 해안이 유명하여 섬 주변은 해양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시가키섬에서 고속선으로 약 2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상공에서 보면 하트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트섬"으로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야에야마 제도 중에서 가장 소박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섬의 하나이다. 섬의 남쪽 끝에는 등대가 서있다.


면적은 10.02km2, 해안선의 길이는 12.6km, 최고 높이는 14m이고 인구는 2006년 1월 현재 210명이다.


육우가 섬의 주요 경제 활동이자 특산물인데, 산호에서 나온 석회질 성분이 소의 뼈를 튼튼하게 하고 육질도 좋게 하여 일본 본토에도 구로시마 소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2월에 "구로시마 소 축제"가 열린다.


구로시마의 해안은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간조 때 산호초가 넓게 노출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산호초가 파괴되기 시작하였고, 갑자기 등장한 왕가시불가사리의 급격한 번식과 포식력이 파괴의 일차적인 원인이 되었다.[1] 구로시마섬에 위치한 일본공원협회 소속의 와에야마 해양공원연구소와 이시가끼섬의 수산청 소속 수산연구소 등에서 산호초 생태계가 살아나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자각하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로시마는 바다거북의 자연 산란장으로도 연구자들에게 유명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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